공감미감 아이스케키통

2008.05.27 17:14

문화통신 조회 수:7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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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포기배추로 만든 김치(김장김치)를 사시사철 신선하게 먹을 수 있는 건 냉장고 덕이다. 특히 김칫독 대신 등장한 김치냉장고는 지난 겨울 만든 김치를 그 다음해 여름까지 먹어도 까딱없을 정도로 신기함을 발휘한다. 그 때문에 김치는 전용 냉장고를 필요로 하는 음식이 되었다.

어릴적 냉장고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즈음, 여름에 김치를 담그면 사흘 가기가 바쁘고 그 김치가 시지 않도록 어머니가 부지런히 물을 갈아가며 찬물에 김칫독을 담가두었던 것을 기억한다. 

 음식 쉬는 것에 적지않은 공포를 가져야하던 시절, 아이스케키는 우리들의 과자 중에서 아주 특별한 존재였다. 어느 때부터 이 아이스케키를 먹었을까?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에 오가는 길목이나, 큰 체육행사가 있을 때 우리 또래보다는 컸지만 그래도 메고있는 아이스케키통이 제 몸을 가누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이 팔러다니던 것을 사먹던 기억이 푸실푸실 살아난다. 이 때만해도 작은 공장에서, 빵집에서 이 아이스케키를 만들었는데  이러한 시기를 조금 지나 곧 대기업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구멍가게마다 아이스케키통이 필수품처럼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얼음공장에 가서 한덩이씩 톱으로 베어다 화채나 냉국을 해먹는 것이 여름의 별식이던 그 때,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냉동 보관되는 아이스케키통은 내게 요술통처럼 보였다.
어떻게 저 안에 있는 아이스케키는 이 더운날에 녹지 않는 걸까? 냉장효과를 갖는 기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곳에는 우리들의 입맛을 유혹하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춘천지역의 큰 야외행사가 주로 열리던 ‘춘고 마당(춘천고등학교 운동장)’ 소년체전인지 도민체전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 무슨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우리는 땡볕에서 온종일 카드섹션이나 매스게임을 해야했다.  이런 우리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란 춘고마당 간다고 엄마가 주신 용돈으로 아이스케키를 사먹는 것.

‘달고 시원한 얼음과자-’
 그 과자는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목으로 넘기는 냉기를 통해서 삭여줄 뿐만 아닐라 달콤하기까지한 그 맛, 그것은 감각적인 맛을 알게 해 준 최초의 음식이 아니었을까?

 한여름 쨍쨍 내리쬐는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구멍가게 앞에 그 가게의 수문장인양 당당하게 자리한 아이스케키통은 지나가는 우리들을 유혹한다. 저것 하나만 먹으면 더위가 싹가가실것 같은, 그래서 갈증은 더욱 심해진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당당하게 묵직한 고무뚜껑을 열고 통 안으로 손을 내젓는다. 그 손에 전해 도는 냉기에서부터 벌써 쾌감은 나의 것이다.

 손을 휘저어 어떤 것을 고를까? 이것저것을 만지작거리며 느끼는 순간의 갈등, 그 갈등의 시간을 너머 나의 손에 쥐어지는 차가움과 달콤함의 추억.

얼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입맛의 즐거움이 이 빙과통을 보면서 되살아난다. 이 통에는 ‘원주 남양빙과’라는 브랜드가 선명하다.
 예전의 빙과와는 비교할 수 없이 혀끝에 닿자마자 사르르 녹아 씹을 필요도 없는 아이스크림이 그 종류도 셀수 없이 많은 요즘엔 혀끝의 미각도 더욱 고급이 되었다. 하지만 한입 딱 베어먹는 순간 차가움이 성큼 입안으로 전해지며, 때로는 각각의 색소로 우리의 혀를 물들이던 그 맛이 아마 최초로 우리에게 아이스크림이 주는 마력을 알게 해 주었으리라.

 기본적인 식생활이 어려운 시절, 배부른 것도 아니고 단지 혀끝의 즐거움을 위해 먹는 음식은 얼마나 사치였을까?
하지만 삶은 이처럼 작은 사치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사소한 쾌락 오래 기억하기도 한다. 아이스케기와 쾌락, 어쩐지 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기도 하지만 그 것마저 사치여서  친구들의 모습만 바라보았을 우리들의 또 다른 친구들의 삶 속에 그것은 도달하기 어려운 또 다른 세계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2007.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