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늘 머리를 빗으시면 머리카락을 모아 종이에 싸놓으시곤 하셨다. 백발의 긴 머리카락은 무슨 보물이나 되는 듯 했고, 쪽진 머리를 풀어 빗는 모습은 경건해보이기도 해 유심히 바라보곤 했던 어린시절.

어머니는 늘 퍼머머리였다. 막내동생의 유치원 입학식, 가족사진 등 기념사진이 남아있는 특별한 날의 어머니 머리는 소위 고데기로 펴져 단정하면서 위엄있게 부풀려있다.

퍼머머리를 잘 관리하지 못하고 머리모양 관리에 게으른 내 머리는 지금까지 대부분 생머리였다. 대학시절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를 4학년 때 싹둑 자른 뒤로는 귀밑 넘기기가 힘든 상태를 유지한다.
할머니의 쪽진 머리를 단정하게 빗도록 도와주는 머리빗은 참빗이었다. 어머니의 퍼머 머리에는 빗살이 성근 도끼빗과 솔모양의 빗이 주로 쓰였고 우리도 그 빗을 자주 사용하였다.
할머니의 빗은 우리들의 유년시절에는 머릿니를 잡는 용도로 쓰였다.

나름 위생에 신경을 쓴다 해도 항상 우리를 수치스럽게 했던 그 머릿니는 참빗에 영락없이 걸려들었다. 볕 좋은 봄날, 툇마루에 앉아 어머니가 참빗으로 우리의 머리를 빗겨 그 머릿니를 잡아주시던 시절은 가난이 묻어있다. 한껏 멋을 부리고 싶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웃으며 그 풍경을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봄볕에 어머니와 그렇게 한유함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름답다.

몇 년전 네팔의 히말라야로 트래킹을 간적이 있다. 공해에 굴절되지 않은 윈시의 햇빛 아래 엄마와 아이들이 모여 앉아 머리 빗는 모습을 보았다. 나의 유년시절처럼 밝은 빛 아래 그들의 머리 빗는 모습은 평화의 다른 이름으로 다가왔다.

얼마 전 나무 빗 하나와 참빗을 어렵게 구했다. 이런저런 잡동사니와 함께 풍물시장 장날 가끔 구경을 하거나 관광지에서만 판다는 참빗과 나무빗, 그 빗을 갖고 싶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정엄마가 관광지에서 사다가 선물하셨다. 매듭고리 하나 달아 지니고 다니는 나무빗, 그리고 머리가 무거울 때 시원한 느낌으로 빗는 참빗, ‘드르륵’ 손가락으로 빗살을 튕기며 빗살로 가는 내 시선은 엄마가 봄볕에 머리를 빗기던 그 옛날로 돌아간다.

유현옥 | 춘천시문화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