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미감 썩은 이

2009.06.23 10:47

문화통신 조회 수:5435

나이 50을 넘기면서 하는 일을 상당부분이 추억을 찾아 돌아다니는 일이다. 할머니들의 기억을 뒤져 생활사를 만들고 옛 자료들을 뒤적여 내 앞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거기서 많은 문화적 의미들을 부여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가만 생각하면 발전적이지 못한 일인 것 같고,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 것 같아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존재감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했던 지나간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게 된 것에 한없이 감사하곤 한다.

 시간을 내어 집안의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상자들을 뒤지다 보면 먼지가 켜켜이 묻어난 헌책이나 물건들 사이에서 갇혀있던 나의 소중한 삶들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새어나오는 연기처럼 현재라는 단단한 뚜껑을 밀고 꾸역꾸역 나온다.
DSC_0153.gif 며칠 전 액세서리 통을 정리하다가 아주 작은 도자기 통 한 개를 발견하였다. 어디서 샀는지 선물로 받은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옛 화장품 그릇을 모방한 작은 돌그릇으로 무슨 기념품점에서 왔을 법한 물건이다.
그 안에 있는 물건은 아이의 충치 두 개였다. 하나는 액세서리 통에서 굴러다니다가 반이 갈라졌고 하나는 온전한 모양이었다. 아마 유치원에 다닐 나이쯤에 충치를 뽑고 기념으로 넣어둔 것이 그렇게 시간을 맞으며 내 액세서리 통 안을 차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를 뽑고 그 이를 베개 밑에 놓아두면 생쥐가 와서 가져가고 동전을 놓고 간대.”
어미가 하는 말을 호기심있 게 들은 아이는 충치가 빠지면 꼭 자기 베개 밑에 놓아두었다. 그러면 나는 아이가 잠든 틈에 그 이를 꺼내고 백원 짜리 동전을 한두 개 놓아두곤 했다.
아침에 깨어 신기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즐기면서 했던 놀이….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게 바쁜 직장생활을 해야 했던 어미는 아이와 흔쾌하게 논 기억이 많지 않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것이 늘 맘에 걸렸다. 대부분 일하는 엄마들이 갖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머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콤플렉스에 시달리면서.
아이가 대학을 가고 집을 떠나 있게 되니 아이의 방은 가끔 청소 하러나 드나드는 추억창고가 되어버렸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며 문구 등속을 버릴까하다가도 제 물건이 집에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아이 때문에 이곳저곳 놓아두고 있는데 오늘은 아이의 썩은 이가 나를 과거로 안내한다. 제때 이를 교정해주지 못해 앞니가 벌어져있는 자신의 모습을 무척 예민해있는  아이 모습도 떠오른다.
충치를 뽑으러 치과에도 제때 가지 못해 집에서 옛 어머니들이 하는 방식으로 실을 걸어 빼주곤 하던, 게으름이 만들어준 물건들. 
그 덕에 생쥐가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내 추억창고에 남아있게 되었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