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미감 저울

2009.08.03 15:15

문화통신 조회 수:6840

아버지의 저울은 인심이 후했다.
내 눈에는 수평이 맞지 않는데도 아버지는 늘 추가 있는 쪽 보다 고추가마니 쪽으로 무게가 쏠려있는 저울로 셈을 하곤 하셨다.
검은 쇳덩이로 된 추가 있는 막대저울은 고추가게를 운영하시던 아버지의 필수품이었다. 일반 소매로 파는 고춧가루 등은 눈금저울이 이용되었지만 부피가 큰 고추 가마니 무게를 잴 때는 늘 이 막대저울이 사용되었다.

저울.gif 알 수없는 눈금들이 촘촘이 박혀있는 대저울로 무게를  재는 모습은 신기하기만 했다. 그 무게의 숫자가 도저히 가늠이 안되었지만 추와 물건 사이의  수평이 맞아야 그 수치가 정확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는 것을 학교에서 배웠다.
무게와 거리의 관계를 수학공식으로 배우기는 했어도 내게는 별 실감이 안나는 것이었지만 그 원리를 세세하게 아셨을것 같지 않은 아버지는 일상용품으로 잘 사용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눈금을 재서 무게를 가늠할 때 마다 딱 맞아 떨어지지 않게 약간 추가 치우쳐 있을 때 무게 재기를 끝내는 것이었다. 막대가 너무 처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위로 치솟지도 않는, 물건의 무게를 조금 덜 잰 약간의 기울기에서 유지하는 균형. 그것은 아버지가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베푸는 넉넉함의 무게였다.

요즘은 이 대저울이 쓰이는 법이 거의 없다. 아버지의 가게에도 시간이 흐를 수록 대저울 보다는 눈금저울이 더 많이 쓰였고 요즘에는 디지털 저울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눈금과 함께 그 눈금에 맞는 가격을 산출해준다.
요즘 내가 저울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체중을 잴 때일 것이다. 시나브로 늘어가는 체중에 신경이 쓰여 집에 있는 체중계로도 재보지만 사우나탕에 갈 때면 으레 저울에 먼저 올라섰다가 탕으로 가는 습관이 있다. 몸이 좀 무거워졌다 싶으면 애써 피하기도 하지만….
그런데 소수점 이하까지 정확하게 재주는 디지털 저울을 만날 때마다 좀 얌통머리 없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숨기고 싶은 살의 무게를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저울이 때때로 야속하다. ‘이거 망가진 것 아냐?’ 때로 저울의 계기판을 의심해보는데 이런 내 속내에 스스로 머쓱해지기도 한다.
또 수퍼마켓에서 사는 야채나 고기의 무게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무게에 일원 단위 까지 가격이 매겨져 나오는 것을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업의 터전으로 삼으셨던 시장의 풍경이 그리워진다.
때때로 제 수치를 훨씬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넉넉히 덤을 주시던 내 부모님과 그곳에서 함께 장사를 하시던 분들의 그 여유가 말이다.

 

문화통신 계간지 2009.여름호